The Star-Spangled Banner
월드컵은 계속됩니다만 한국도 지난주에 마지막 시합을 했고, 미국 역시 엊그제 공교롭게도 한국의 마지막 시합 상대를 맞아 골키퍼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분패했죠. 월드컵에서 보셨겠지만, 시합 전에 국가를 연주하는데, 선수들이 흡사 전쟁터에 나가는 것처럼 결의에 찬 모습으로 온 힘을 다해, 한마음으로 부르곤 합니다. (우는 선수들도 적지 않은데요.) 마침 내일이 미국독립기념일이기도 하여 오늘은 미국 국가에 대해 말씀을 나눌까 합니다.
Whitney Houston singing "The Star-Spangled Banner" in 1991 for Super Bowl XXV
미국시민권을 취득하셨든 아니든, 미국에서 어느정도 살다 보면 미국 국가를 연주하는 자리에 갈 때가 있죠. 대한민국의 국가의 제목은 “애국가”이고, 후렴에 나오듯 뭐뭐 합시다라는 구성이라고 하겠는데요. 미국 국가의 제목은 “The Star-Spangled Banner” 성조기라는 자기네 국기의 이름입니다. 즉 국가가 국기에 대한 노래인 것입니다. 미국 독립이 어느해였는지는 알고 계시죠? (1776년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 노래가 없었습니다. 1812년의 전쟁이라는, 미국과 영국 사이에 만 2년 반 넘게 벌어진 전쟁이 있었는데, 그때 Baltimore 전투를 지켜본 Francis Scott Key라는 변호사가 그것을 바탕으로 시를 쓴 것이 이 미국 국가의 가사가 되었습니다.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아까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시를 기존의 멜로디에 붙여서 부르도록 했거든요. 그런데 그 곡조를 작곡한 사람이 영국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가는 영국사람이 19세기 초에 발표한 곡에 다른 가사를 붙여 완성된 것이죠.
처음에는 국가가 아니었다가, 1931년에 공식적으로 국가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 오래 전의 일은 아니죠? 애국가처럼 4절까지 있지만 1절 외에 더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요.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미국 국가 가사를 외우고 있는 만큼 써내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요. 1절을 다 제대로 쓴 학생은 많지 않았고요, 첫 한두 줄 쓴 학생도 꽤 되었고, 개중에는 처음에 나오는 네댓 단어만 쓴 학생도 있었습니다. 우선 이 가사의 문법적인 구성이 꽤 복잡합니다. 1절의 반을 차지하는 네 줄이 한 문장이에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전쟁에 관련된 말이라든가, SAT vocab에서 볼 수 있는 단어도 있고, 무엇보다 표현이 좀 시적인 것도 많은데요. 치열한 전투가 있은 다음날 아침이 배경이 되겠습니다.
그럼 한 문장씩 읽어볼까요?
O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Whose broad stripes and bright stars through the perilous fight,
O'er the ramparts we watched, were so gallantly streaming?
굉장히 긴데 한 문장인 것도 모자라서 이게 또 의문문입니다. 어제 석양의 마지막 빛에 우리가 자랑스럽게 경례를 했던 것이 지금 이른 새벽빛에 보이는가, 라고 묻죠. 여기서 그것은 당시의 미국 국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의 넓은 줄과 반짝이는 별이 우리가 보초를 서서 지켰던 성벽 위로, 위험한 전투를 하던 내내 용감하게 휘날렸다는 말을 합니다.
다음 두 줄 읽어보겠습니다.
And the rockets' red glare, the bombs bursting in air,
Gave proof through the night that our flag was still there;
로케트에서 빛이 번쩍일 때, 폭탄이 공중에서 터질 때, 우리의 깃발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어젯밤 내내 알려주었다, 라고 하죠. 여기서 이런 대포와 폭탄은 영국 군함에서 쏘아올린 것이라서, 물론 포화가 밤을 환히 비추면서 그럴때마다 성조기가 아직 있다는 것이 보였다는 뜻입니다만, 그 안에는 영국군이 이런 폭탄을 쏘아도 실력이 없어서 미국군대에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는 숨은 뜻도 있습니다.
마지막 두 줄입니다.
O say does that star-spangled banner yet wave,
O'er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
자유인의 땅과 용감한 자의 고향 위로 아직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는가?라는 또 하나의 의문문으로 끝을 맺죠.
원래는 이것에 대한 답이 2절에 나오는데요. 네, 물론 아직 휘날리고 있다는 대답입니다만, 1절만 자꾸 부르다보니까 이게 그냥 질문이 아니라 성조기가 휘날리는 것을 알면서 괜히 물어본다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 쓰는 문학적인 장치를 rhetorical question 수사의문문이라고 합니다. 답을 아는데 물어보는 것이죠. 예를 들어 누가 뻔한 내용을 물어본다면, 그것에 대한 대답 대신 미국사람들은 “Is Pope Catholic?”이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교황이 천주교야? 하는 거니까 당연하다는 얘기죠. 그런데 철학이나 종교학을 공부한 제 동료들에 의하면 이게 수사의문문이 아니라 타당한 질문이라고 합니다만, 그런 소수를 제외한 일반 미국인들은 이것을 한국어에서 “두 말하면 잔소리지”같은 용도로 쓴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상 미국 국가 1절을 살짝 살펴보았는데요,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이 핑 도신다면, 어느정도 미국인이 되셨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전부터도 비공식적인 국가는 몇개 있었는데요, 지난번 말씀드린 Irving Berlin이 쓴 “God Bless America”라든가, Ray Charles가 멋진 편곡으로 부르기도 한 “America the Beautiful,” 또 영국 국가에 가사만 바꾼 “My Country ‘Tis of Thee”가 대표적이죠. Star-Spangled Banner는 정말 공식행사 같은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데, 일반인은 스포츠에 관련된 곳에서 제일 많이 듣지 않나 싶습니다. 월드컵 같은 국제경기는 물론, 미국의 프로 스포츠나 학교간의 시합 전에도 국가를 연주하는데요. 관중들은 잘 따라부르지는 않죠. 그러나 작년 4월 Boston Marathon 테러 사건 이후 처음으로 Boston에서 ice hockey 경기가 열렸을 때, 매 경기 전에 국가를 부르는 Rene Rancourt씨가 노래를 시작하자 관중들이 같이 부르기 시작했고, 그분은 마이크를 자기에게서 떼어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했습니다. 굉장히 감동적인 장면이었죠.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딴 선수의 국가를 연주하는데요, 1968년에 미국 국가에 얽힌 사건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미국 육상 선수 두 명이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땄는데, 사전에 회의를 해서 국가 연주시 가만히 서있거나 손을 가슴에 대는 대신, 주먹을 쥐고 팔을 치켜들고, 고개를 숙이기로 했습니다. 흑인 선수였는데, 미국내의 인권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이었죠. 68년이라면 Martin Luther King Jr.와 Robert Kennedy가 암살을 당하는 등, 미국이 여러가지로 어수선할 때였는데요. 이 선수들은 이 행동으로 인해 메달을 박탈당하고, 일각에서는 비판도 있었지만, 또 한편에서는 인권운동가로 추앙되기도 했습니다. London 올림픽에서 한국의 박종우 선수가 독도 세레머니를 했다고 역시 메달을 빼앗길 뻔 했던 것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미국 국가가 한 옥타브 반이라서 부르기 굉장히 어렵고, 가사도 어렵지만, 노래를 들으시면서 읽어보시면 그 감정은 전달이 될 것 같습니다. 안전한 July 4th 보내시기 바랍니다. Happy Fourth, ever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