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 Luther King Jr. Day

미국에서 살다보면 이민자로서, 또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으로서 받는 차별대우에 대한 에피소드를 적게는 한두 개 갖고 있거나, 거의 매일 겪는 일이다, 라고 대답을 하실 분도 계실텐데요. 20세기 중반 미국 남부지방에서 인종간의 비평등이 법으로 보장, 명시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것을 고치려 노력한 인권운동가도 많았죠. 오늘은 그중 가장 존경을 받고 유명한 Martin Luther King Jr.에 대해서 말씀을 나눌까 합니다.  

Dr. Martin Luther King, Jr. waves to supporters from the steps of the Lincoln Memorial in Washington D.C. during the "March on Washington." There, he delivered the "I Have a Dream" speech, which boosted public support for civil rights. Source: …

Dr. Martin Luther King, Jr. waves to supporters from the steps of the Lincoln Memorial in Washington D.C. during the "March on Washington." There, he delivered the "I Have a Dream" speech, which boosted public support for civil rights. Source: National Geographic

다음주 월요일이 이분의 날이죠.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 분에 대해서 배우기도 하는데요.  1929년 Georgia생으로 부친도, 이분 자신도 목사였습니다. 전통적으로 흑인 명문 대학인  Morehouse College를 졸업했고, 신학대학을 또 다닌 후에 Boston University에서 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요.

아시다시피 미국의 흑인 인권신장에, 나아가서 미국의 기타 비백인 인종의 인권신장에, 또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죠.  학교에 다닐때 읽은 간디와 미국의 사상가인 Henry David Thoreau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고요.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제일 큰 영향은 종교였지요.  Alabama에서 목회를 했고, 이사람의 설교는 물론, 저서나 연설에도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미국 남부에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법으로 정해져있었습니다. The Jim Crow Laws라고 하는데, Jim Crow라는 것은 흑인을 비하하는 지칭입니다. 이 법의 내용을 보자면 예를 들면 상점에서 백인손님을 우선 상대하고 다 끝난 다음에 흑인을 돕는다든가, 버스를 탈 때에도 흑인승객이 과반수를 차지하지만 앞쪽은 백인전용 자리이고, 백인승객이 타고 있으면 흑인승객은 일단 앞으로 올라서 차비를 낸 후에 내려서 다시 뒷문으로 타야 했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백인전용칸과 흑인전용칸이 있어도 백인 승객의 수가 백인전용좌석보다 많아지면 흑인이 당연히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해야했고, 만원버스라면 내려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1955년에 이 버스제도로 인해 인권운동의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이 생기죠.  Rosa Parks라는 여성이 흑인전용좌석 맨 앞줄에 앉았다가 백인이 많이 타자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는데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체포를 당합니다. 대응책으로 그 지역의 전 흑인에게 버스를 보이콧 하자는 캠페인을 했습니다  그것을 주관하는 단체를 급히 만들면서 그 단체의 장으로 뽑힌 사람이 바로 Dr. King이었는데요. 이 일로 인해서 이 분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런 것을 일컬어 영어표현으로 “in the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이라고 하는데요, 딱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시간에 라는 뜻이죠.

이 보이콧이 만 1년을 넘겼다고 하니 참 대단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결국 이 여성과 비슷한 일을 겪었던 다른 사람들의 케이스가 승소해서 결국 버스내에서의 인종차별이 불법이 되었죠.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Martin Luther King Jr.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것은 몇년 후인 1963년의 March on Washington이겠는데요. 25만이라는, 당시로서는 역사상 최대규모의 인파가 참석했고, 18명이나 연설을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이분이 한 연설이 그 유명한 “I Have a Dream” speech입니다.  깁니다만 학생들이 많이 욀 정도로 정말 대단한 표현이 많습니다. 주목할 점은 연이어 나오는 문장이나 구를 동일한 구나 단어로 시작하는 테크닉을 쓰고 있는데요, <<두 도시 이야기>>의 시작부분이 “It was the best of times, it was the worst of times, it was the age of wisdom, it was the age of foolishness...”이런 식으로 나가죠.  이 “I Have a Dream” 연설에서도 가장 뛰어다날 수 있는 마지막부분이 “I have a dream”을 반복합니다. 이 연설이이분이 1964년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Obama 대통령도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른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과 2006에 나온 bestseller의 제목에서 희망, hope이라는 단어에 중점을 두고 있죠.  그런데 그 책 제목 The Audacity of Hope의 부제를 보시면 Thoughts on Reclaiming the American Dream이라고 해서 희망과 꿈 둘 다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968년에 아직도 미제로 남아있는 의문의 상황에서 39세의 나이로 암살당했고요. Martin Luther King Jr. Day가 연방휴일이 되지 못할 뻔했던 이유 중에는 물론 정치적, 인종적인 것도 있었지만 경제적인 것도 컸다고 합니다.  하루를 더 공무원에게 임금을 주면서 쉬게 할 여력이 되나가 관건이었다고 하죠. 1983년에 제정되어서 86년부터 시행되었지만 50개 전 주가 휴일로 지정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00년도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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