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American
Living in America에서는 미국 문화, 사람, 생활에 대해 말씀을 나누면서 미국적이라는 말을 많이 하죠. 오늘은 미국적이지 않다는 뜻의 단어도 등장할만큼 대단했던 시기와 그와 관련된 사건과 인물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As american as apple pie".
미국적이라는 말을 영어로 American이라고 하겠죠? 그래서 “as American as apple pie” 사과 pie 만큼 미국적이다라는 표현도 있는데요. 반대로 un-American하면 미국적이지 않다는 말이 되겠는데요. 한때 미국 국회에는 un-American activities 미국적이지 않은 활동을 조사하는 위원회가 있었습니다. 비미국적인 행동을 했다는 의심이 가는 사람을 소환해서 그 진위에 대해 질문하고, 그 대답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법적, 직업적인 제재를 결정한 것입니다.
보통 미국, 하면 이런 일과는 거리가 멀 거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우선 20세기 초, Russian 혁명 이후에 전세계를 강타한 공산주의와 Anarchism에 대한 반응으로 미국에서도 이런 혁명이나 파업으로 인한 혼란이 올 수 있다는 공포가 있었는데요. 이 소위 the First Red Scare 첫 번째 적색 공포에서 주목할만한 일이라면 나중에 FBI의 창설에 크게 기여를 했고 초대 국장의 자리에 30년이 넘게 있으면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수집했던 J. Edgar Hoover가 그 계통의 일을 시작한 것이 이 시기였다는 점입니다. 나중에는 힘이 너무 커져서 그 어느 대통령도 해임하지 못했다고 하죠.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후에 다시 이 적색 공포가 미국을 휩쓸게 됩니다. The Second Red Scare라고도 하는데, 이전에는 소위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행동을 함으로 사회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이번에는 사회 전반에 소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 부적절한 행위를 했거나 하는 사람들을 색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이번주에 선거가 있었는데, 미국 하원과 상원에서 media쪽 사람들을 큰 목표로 했죠.
하원을 줄여서 the House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반미활동조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원래 이름은 단어순서가 달랐지만 말하기 쉽게 줄이려다보니 the 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하면 HUAC가 되어서 대부분 HUAC이라고 불렀는데요. 열한 명의 Hollywood사람을 소환함으로 시작했는데, 그중 바로 대답을 한 사람을 뺀 나머지 열 명을 the Hollywood Ten이라고 합니다. 이중 대부분이 자신의 행동은 미국 수정 헌법에 보장되어있는 권리다, 라는 말을 했으나 법정모독으로 징역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얼른 속된 말로 불어야했죠. 좋게 말하면 “sing like a canary,” 나쁘게 말하면 “rat”이라고 하는데요. 내가 예전에, 또는 현재, 반미라고 현재 정의된 단체에 속했는지, 또 누가 있었나,를 밝혀야 했고요, 그러지 않을 경우 아까 말씀드린 징역이라는 법적인 처벌을 면하더라도 일을 더이상 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위원회에 불려간 Hollywood 사람과 음악인이 수백명이었는데요, 2-3년간 버티다가 할 수 없이 정보를 공개한 사람도 있고요, 바로 대답한 사람도 있고, 끝까지 역시 미국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대답을 거부한 사람도 있었는데, 대답의 거부가 곧 시인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즉 blacklist에 오른 것이죠. 이중에는 Oscar 상을 받았거나 후보에 오른 사람도 많았고 다 A급 projects만 하다가 B급 작품을 겨우 하거나, 아예 연예계를 떠나거나, 미국을 떠나 있었다고 하고요. 이런 사람들은 HUAC이라고 하지 않고 the Un-American Committee라고 불렀다고 하죠.
또 Joseph McCarthy라는 상원의원이 반공활동에 앞장서면서 증거가 불충분한 사람도 몰아가기를 했는데요. 그래서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McCarthyism이라고 하면 뭔가 증거가 부족한데도 어떤 단체에 반대되는 행위를 한 것으로 단정짓는 행동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한글표기로 매커시즘이라고 하는 것으로 압니다.
아까 the Hollywood Ten에서 가장 유명했던 Dalton Trumbo라는 영화작가는 50년대에 본명으로 일을 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의 신분과 이름을 빌려서 screenplays를 썼다고 하는데요, 워낙 실력이 좋은 사람이라 blacklist에 올라있던 10여년동안 Oscars상을 두 번이나 탔습니다. 그중 하나는 다들 보신 영화일 것 같은데요. 뭔지 궁금하시죠? 다름아닌 Roman Holiday <<로마의 휴일>>입니다. Blacklist 규제가 풀린 60년대에도 유명한 작품을 썼는데요. Kirk Douglas가 나오는 Stanley Kubrick 감독의 Spartacus와 Paul Newman 주연의 Exodus <<영광의 탈출>>입니다. 이 작품은 음악이 유명해서 한국TV 영화관련 programs에서 쓰기도 했죠.
또 Zero Mostel이라는 comedian겸 배우도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Broadway로 와서 부와 명예를 얻었는데요. <지붕위의 바이올린 주자>>의 아버지 역을 처음 한 분이고, 지난 20년 사이에 Broadway에 올랐던 The Producers라든가 A Funny Thing Happened on the Way to the Forum등의 작품 역시 초연을 한 분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말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Broadway 안무와 무대연출로 유명한 Jerome Robbins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the McCarthy Era 후에, 즉 blacklist 사건이 지나고 Jerome Robbins가 Zero Mostel의 Broadway musicals 대표작 셋 중에서 두 작품의 무대연출을 했습니다. 처음에 제작자가 괜찮겠냐고 물어봤다고 하죠. 그랬더니 Zero Mostel이 밥 같이 먹으라는 얘기냐고 반문했다고요. 그래서 아니, 작업만 하라는 거다,라고 했더니 그럼 당연히 같이 일하겠다고 하면서 우리는 blacklist를 안하거든,이라고 덧붙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Jerome Robbins가 처음 온 날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어, 거기 입 가벼운 친구,라고 불러서 다들 웃고 괜찮아졌다고 하네요.
이 안무가 외에 이름을 댄 사람중에 유명한 사람이 있죠. 수많은 명작을 만들고 New York에 the Actors Studio라는 연기단체까지 세운 거장 Elia Kazan입니다. 이사람이 HUAC에서 증언을 한 후에 만든 <<부두>>는 말하자면 그의 변인 셈이죠. 가장 유명하다보니 가장 많은 원망과 질타를 받아서, 1999년에 the Oscars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을 때 장면을 보시면 일어나서 박수친 사람이 반, 나머지는 앉아서 박수만 치거나 아니면 아예 가만히 있었는데요. 그 이유입니다.
이렇게 60년이 넘었지만 아직 여파가 있는 일이고, 9/11이후 어떤 면에서는 재현되고 있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미국의 적이 바라는 것이 사실 테러나 폭력의 가능성에서 오는 일상생활의 변화나 불안감, 공포도 있겠지만 나아가 거기서 오는 이런 분열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Hollywood blacklists 찾으시면 낯익은 이름이 꽤 있을텐데요. 좋아하시는 사람 읽어보시면 지식도 얻고 영어공부도 되고 미국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지는 1석3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