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Patrick's Day
봄기운이 나나 싶더니 아직 미국에서는 정식으로 봄이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날씨입니다. 영어 속담에 “March comes in like a lion and goes out like a lamb.”이 있는데, 사실 이 속담을 반대로 써도 뜻이 맞는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만큼, 3월의 날씨는 봄이라는 계절이 거의 없어지고 있는 요즘이 아닌 예전에도 자기 멋대로였던 것 같습니다. 3월 중순에는 알아볼만한 날이 두엇 있는데요, 먼저 가방 끈이 조금 긴 것을 보자면, “the Ides of March” 3월 중간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영어 스펠로 I-D-E-S라고 해서 로마 달력에만 나오는 날짜입니다. 3, 5, 7, 10월의 보름을 말하고 다른 달에는 13일이 되는 좀 이상한 날짜인데요. 이 표현이 나오는 작품은 Shakespeare의 희곡인 Julius Caesar입니다. 한 점쟁이가 Caesar에게 와서 3월 15일을 조심하라는 말을 해주는데요, 유명한 대사이죠. “Beware the Ides of March”라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 유명한 대사가 둘 더 나옵니다. 하나는 Caesar가 암살당할 때 마지막으로 했다는 말인 “Et tu, Brute?”라는 라틴어 대사인데, 많이 응용되는 표현이죠?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는 정식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Brutus는 Caesar가 자식처럼 아끼던 사람이었지만 암살계획에 동조하게 되고, 희곡에서 보면 왜 그 결정을 내렸는가에 대해 사적인 감정보다 대의를 앞세워서 그랬다는 명연설을 해서 놀랐던 사람들이 수긍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때 짠 나타나는 사람이 Mark Antony로서, 반대되는 내용의 연설을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돌리게 되고, Caesar를 시해한 사람들이 역적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 마지막 연설은 “Friends, Romans, countrymen, lend me your ears.”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로마 역사이지만 Shakespeare가 쓴 영문학 작품을 통해 잘 유명해진 암살사건이라고도 하겠는데요, 이런 예가 꽤 많죠. 역시 Shakespeare가 쓴 Antony and Cleopatra도 있고요. 그리고 20세기 들어서는 Hollywood의 시대극으로 우리가 특히 서양 역사나 문학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Source: Brown & Brown Blogging Team
그리고 3월 17일도 유명한 날이죠. 바로 St. Patrick’s Day, 성 패트릭의 날입니다. St. Patrick은 Ireland의 수호성자인데요, 본고장뿐이 아니라 Ireland 민족이 이주해 살고 있는 전세계의 지역에서 이 날을 기념합니다. 미국에서는 아마도 초록색 옷을 입고 많이 마시는 날로 거의 인식되고 있습니다. 또 Irish의 세력이 큰 곳에서는 St. Patrick’s Day parade가 있고, 그 전에 조찬등의 모임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New York과 Boston은 Irish가 많고 영향력이 커서 이 날이 꽤 중요시되고 있기도 합니다. 퍼레이드도 이 두 도시에서는 1700년대, 미국 독립 전에 시작했다고 하니, 정말 역사가 깊은 날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Irish라고 하면 어떤 연상이 되시는지요? 빨갛거나 까만 머리, 울로 짠 케이블 무늬 스웨터, 행운의 네 잎 클로버와 그것을 갖고 있는 요정인 leprechaun 등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또 술을 빼놓을 수 없지요. 위스키와 맥주가 있겠네요. 그리고 전형적인 민족성은 뭐가 있을까요? 술과 노래를 좋아하고, 기분파이며, 좀 격한 성격일지 모르나 순수하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요. 아일랜드의 역사를 잠깐 보면, 영국 옆에 있고, 원래는 Gaelic이라는 자기들만의 언어가 있었는데 영국에 속하게 된 후에 점점 그 언어를 잃게 되었고요. 17세기에 시작, 18세기와 19세기에 미국으로 이민을 많이 왔으며, 특히 19세기 중엽에 있었던 아일랜드 대기근 때 많이 이주왔는데요. 대부분이 미국에 와서 처음에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18세기에 온 사람들 다수가 노예의 바로 위 정도 되는 직업으로 온 것이었고, 19세기에 많이 왔을 때도 이미 정착한 소위 WASP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았죠. “No dogs, No Irish”라는 문구도 보였다고 하는데요. 그게 얼마나 보편적이었는가는 모르겠지만, 이런 얘기가 나온다는 자체를 보시면 다른 인종이 볼때는 다 백인이지만 그 사이에서는 계급이 존재했거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는 구인광고같은 데에서도 “No Irish need apply.”라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대놓고 차별을 해도 괜찮았던 때였죠.
어쨌든 이런 핍박이랄까요, 천대가 이 이민자들에게 자신의 뿌리에 대한 긍지를 더 튼튼하게 해줬습니다. 미국에 지금 3000만명이 넘는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요. 본국의 인구가 600만 정도이니까 대단한 숫자죠? 그리고 본토의 역사로 다시 돌아가보면, 영국의 통치하에 있으면서 계속 독립을 시도하다가 1920년대 초에 드디어 독립이 되기는 했는데, 아일랜드 전체는 아니었지만, 거의 대부분이 아일랜드 공화국이 되었고, 그 섬의 북쪽은 북아일랜드라고 해서 지금까지도 영국의 영토입니다. 그래서 20세기 중후반에 그곳에 여러 문제가 많았었죠. 뭔가 대항할 상대인 주류가 있으면 그것에 반대해서 정체성을 뚜렷이 하고 똘똘 뭉치는 것이 쉬울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일랜드는 이렇게 영국과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일랜드 계통 사람에게 너 영국이지, 라고 얘기를 하면 싫어하거나, 실례가 될 수도 있겠죠? 아까 언어를 잠깐 언급했는데, Gaelic이라는 아일랜드어는 크게 보면 물론 Indo-European 어족에 속하지만 독일어나 덴마크어처럼 영어와 같은 Germanic 어파는 아니고 Celtic이라는 어파에 속해 있습니다. 물론 한국처럼 아예 다른 어족 사람이 볼 때는 그게 그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요. 좀 거리가 있는 언어입니다. 이 Gaelic은 먼 옛날, 즉 첫 밀레니엄때에는 활발하다가, 그후에 거의 사어가 되었고, 근대에 와서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데, 아일랜드 공화국의 공식어이지만 사실 거기에서도 영어가 제일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일랜드의 민족이나 역사적인 상황이 한국을 연상시킨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요, 한국사람들이 재주가 많은 것처럼 아일랜드도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문인이 많은데요. 멀리는 Gulliver’s Travels 걸리버 여행기를 쓴 Jonathan Swift부터, 20세기의 최고소설가라 불리는 James Joyce, 그 외 유명한 Oscar Wilde, George Bernard Shaw, William Butler Yeats, Samuel Beckett, Seamus Heaney등이 아일랜드 출신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Gaelic으로 쓴 글때문이 아니라 영어로 쓴 글때문이죠. (Beckett의 경우는 불어로도 썼습니다만.) 그래서 민족주의였던 사람들은 아일랜드를 사랑하면서도 말하자면 적인 셈인 영국의 언어, 지배자의 언어인 영어로 된 작품을 읽고 사랑하고, 또 영어로 자신도 창작을 한다는 것에 대해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걸 접할 때 느낀는 것이 혹시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더 오래 받았을 경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있고요. 또 미국이나 다른 곳으로 이민을 간 한인들의 후손이 한국어를 잘 하고 못하는 것과,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은 별개의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아까 작가들 이름에서도 보셨겠지만 Seamus 외에는 딱히 이름에서 아일랜드다, 라고 알 수 있지는 않죠? 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영어 이름입니다. 그러나 영어 이름이라고 해서 다 같은 영어이름은 아니죠. 아까 말씀드린 St. Patrick’s Day의 영향인지 아일랜드 계통 남성에게는 Patrick이라는 영어 이름이 흔했고요, 또 Sean이라는 이름도 많았는데, 이것은 John이라는 이름이 아일랜드화한 것입니다. 물론 현재 미국에서는 이름이나 성만 가지고 어디 계통이구나, 라고 쉽게 알 수도 없고, 또 그렇게 단정해서도 안되지만, 이름의 역사나 연관지가 이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대충 Irish 성의 특징은 앞에 O’로 시작하는 것, 또는 Scottish와 공통이지만 Mac/Mc으로 시작하는 것, 또 Fitz로 시작하는 것이 많죠. Irish Catholic으로 미국대통령이 되어서 당시에는 큰 이슈였던 JFK의 F도 어머니의 성인 Fitzgerald에서 따온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이슈였다는 것 자체가 참 재밌죠?
아일랜드 계통에 국한하지 않고 범 미국적인 명절이 된 St. Patrick’s Day에는 다들 이름을 Irish식으로 바꾸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어서 장가시라면 Chang이 아니라 O’Chang, 또는 Choi는 O’Choi, 이런 식이죠. 올해 St. Patrick’s Day에는 초록 옷을 입은 채로, 초록색 색소를 탄 Guinness를 마시며 그날만은 Knicks의 fan이 아니라 Celtics를 응원하시면서 내 이름은 O’Kim이야, 이렇게 말씀해보시는 것도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