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cement
미국은 한국처럼 식구들이 학교에 자주 왕래를 할 수 있는 거리에 살지 않는 경우가 많기때문에, 다수의 대학생에게는 졸업식이 가족들이 자기 학교에 오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을 여기서 볼 수 있는데요. 한국은 물론 졸업식이 중요합니다만 그전에 가족들이 학교에 갈 기회가 또 있죠? 바로 입학식입니다. 미국대학은 입학식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졸업식이 가족에게는 물론, 학생 자신에게도 학교의 공식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자 교가를 부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자리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어찌보면 입학을 졸업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것 같기도 한데, 그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학번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몇학번 해서 입학한 연도를 대죠. 그걸로 선배인가 후배인가를 결정하고, 누가 누구에게 어떤 정도의 예를 갖춰야 하는가도 정하는데요. 미국은 비슷한 개념으로 Class of 뭐뭐라고 나오는데, 이게 졸업을 한 연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조기졸업을 하거나 반대로 늦게 졸업을 하는 경우, 입학을 같이 한 사람들과 이 Class of 연도가 달라지죠. 이게 별 거 아닌 차이로 보일 수도 있지만 두 문화사이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의 차이를 아주 잘 나타내는 예입니다. 언제 시작했느냐보다는 언제 완성했느냐에 주목한다는 것이죠. 졸업을 함으로써 비로소 그 학교 출신이 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Source: Boston University
물론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기타 유명인은 졸업을 하지 않아도 종종 다녔던 학교에서 친한 척을 하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졸업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큰 차이라서, 운동선수의 경우 나중에 학점을 채워서 졸업을 하기도 합니다. 예전만큼 큰 활약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도 현역인 Vince Carter라는 왕년의 NBA star가 있습니다. NBA에 들어온 후에 나머지 학점을 따서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유독 이 사람이 생각이 나는 것은, 졸업식에 꼭 참석을 하고 싶어 했어요. 근데 하필이면 그해 그 선수의 팀이 NBA playoffs에 진출을 했는데, 아시다시피 졸업 시즌과 겹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마 졸업식 당일 저녁에 Game 7이 있었는데, 이 선수가 고집을 부려서 전용 비행기로 잠깐 아침에 참석을 하고 바로 경기가 열리는 곳으로 날아갔다고 해서 말이 많았죠. (결과는 1점차 패) 자기보다는 어머니를 위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Boston의 옆동네인 Cambridge는 오늘이 Harvard 졸업식이고 다음주 금요일이 MIT 졸업식인데요, 이맘때 다니다보면 자기 자녀가 마치 이세상에서 유일한 졸업생인 것처럼 만면에 웃음을 띄고 가슴을 딱 펴고 자랑스럽게 활보를 하는 부모님을 수없이 볼 수 있습니다. 또는 나는 Harvard 엄마예요, 나는 MIT 아빠예요, 하는 말이 써진 T-shirts를 입고 있는 사람도 많고요.
Harvard 졸업식은 좀 복잡합니다. 졸업식 전날 대부분의 전문대학원과 학부에서는 Class Day라는 행사를 하는데, 졸업생이 다 참석하는 것은 아니며, 여기에 각각 연사가 나옵니다. 학부 Class Day 연사는 학생들이 뽑는데, 꼭 존경한다기보다는 그때 관심이 있고 따르는 사람을 보통 초청하죠. 이슈메이커도 많은데 그러다보니 연예인, 언론인, 잘 알려진 사업가나 정치인이 됩니다. 어제는 Facebook의 Sheryl Sandberg였고, 학생들이 맨 처음 뽑았던 연사는 Martin Luther King Jr.였으며, 역시 Living in America에 나왔던 Hank Aaron도 연설을 했습니다. 졸업식에 참여하는 모든 Harvard 졸업생이 한곳에 모이는 행사는 졸업식 당일 아침에 있는 의식인데, 졸업생 대표가 셋 연설을 합니다. Harvard가 MIT와 달리 견고히 학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여기서 알 수 있는데, 이 셋 중 둘이 학부생이고, 하나는 영어로, 하나는 Latin어로 연설을 합니다. 미국문화의 줄기를 따라가다보면 이렇게 영국이 툭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외 연설은 없고, 설립된 순서대로 학교별, 학위별로 일어나 단체로 졸업을 하게 됩니다. 다음 명예학위 수여를 끝으로 다 헤쳐서 대학원별로, 또 학부는 기숙사별로 모여서 한 사람씩 졸업장을 받게 됩니다. 점심 후에 오후 행사가 또 있는데 그때에야 비로소 총장과 메인 연사가 연설을 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한 사람들은 이때쯤 되면 가족끼리 친구끼리 축하하고 즐기고 싶어서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그래도 메인 연사의 의미는 크죠. 몇시간 후면 Bloomberg 전 New York 시장이 연설을 하겠네요. 아까 영국을 언급했는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거의 100%가 영국인 연사였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외국의 원수, 학자, 정치인, 금융계 사람등이 나왔고, 최근 10년사이에는 전에 비해 약간 다른 성격의 사람들도 연사로 초청되어 학생들이 불만을 표시했다고 하죠.
MIT는 비교적 간단한 편입니다. 입장해서 연설 좀 듣고 한사람씩 나가서 졸업장 받고 끝. 특이한 점이라면 MIT의 school ring은 다른 학교와 굉장히 달라서, beaver가 조각되어있습니다. 졸업 전에는 이 반지를 낄때 머리가 손톱쪽을 향하게 하다가 졸업 후에는 반대로 다리가 그쪽을 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연사로는 정치가도 많이 오지만 전통적으로 business 쪽, 특히 technology 계통의 사람들도 많죠. 올해는 Dupont사의 회장 Ellen Kullman씨가 연사로 초청이 되었습니다. MIT는 그 누구에게도 명예학위를 준 적이 없습니다. 입학생도 개인의 학업 능력에 의거해 뽑듯이, MIT의 모든 학위는 자기가 노력을 해서 얻어야 한다는 철학인데요.
지난 30여년간 두 학교에서 다 메인 졸업연설을 한 사람은 Helmut Schmidt 독일 수상, Al Gore 부통령, Kofi Annan 당시 U.N. 사무총장입니다. 또 MIT와 Harvard Class Day 연사였던 사람으로는 Ben Bernanke, Bill Clinton, Sal Khan등이 있습니다.
졸업식에 관한 미국과 한국의 차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졸업이 학업을 끝낸다라는 뜻으로 졸이 비석에 쓰는 그 한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어로 졸업하다가 뭐죠? Graduate이죠. (발음만 달리하면 졸업생이라는 말도 되는데요, Dustin Hoffman 주연의 The Graduate이라는 영화는 한국에서 졸업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사실은 졸업생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졸업식”이라고 할 때는 다른 말도 씁니다. Commencement라고 합니다. 학위를 취득하다라는 뜻인데, commence의 본래 의미는 시작하다이죠. 한국과 정반대입니다. 여태까지 한 것을 끝낸다는, 즉 과거에 중점을 두는 의미보다는 학생으로서의 과정을 마치는 것이 곧 예전에는 그 다음 과정이었던 엄연한 학자로서의 시작을 알리기 때문에 이 말을 쓰게 된 것입니다. 지금이야 대학을 나오고 나서도 학업을 계속하거나 다른 곳에서 수습생활을 하는 분이 많지만, 어쨌든 미래지향적인 면에서 이 단어를 쓴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미국은 형식을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알려졌고 어느정도 사실이지만, 우선 형식을 따지는 자리 자체가 적습니다. 졸업식 외에 이민자라면 시민권 선서식, 또 결혼식, 장례식 정도밖에 없죠. 미국인이 뭔가를 자신의 힘으로 성취한 것을 형식과 자유로움을 섞어서 축하하는 이 행사의 성격을 알면 미국문화에 그만큼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