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hammad Ali

잘 아시겠지만 지난주에 유명한 권투선수 Muhammad Ali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국뿐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news였죠.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sports계 인사들은 물론이고, 대통령을 비롯해서 말 그대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이 분은 20세기 후반부 미국 사회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늘은 이분이 어떻게 미국인에게 그렇게 큰 의미를 주게 되었는지에 대해 조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Muhammad Ali vs. Sonny Liston by Neil Leifer (1965)

Muhammad Ali vs. Sonny Liston by Neil Leifer (1965)

우선 이분의 태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는 미국에서도 약간 겸손하게 보이는 게 미덕이었는데요. 설사 태도가 겸손하지 않은 사람도 최소한 남을 배려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Ali는 그 관행을 깨어버렸죠. 언제나 계속해서 나는 잘났다,라고 말을 하고 다녔거든요. 1960년 the Olympics에서 gold medal을 따고도 그와 비슷한 소감을 말했고요. Professional boxer가 된 후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아직 흑인에 대한 차별대우가 당연히 여겨지던 시절에 소위 일개 권투선수가 그런 언행을 보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죠. 이분이 한 말 중에는 유명한 구절이 참 많은데요. 그중 과반수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피력하는 내용입니다. 지금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또는 언론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PR agent나 marketing agent, image consultant등을 고용해서 자신을 홍보하고 가치를 높이면서 branding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Ali는 그 옛날에 그 어려운 일을 혼자서 해낸 것이죠.  

다음으로 아마도 이분과 가장 쉽게 연상되는 언변, 즉 말솜씨가 있습니다. 이분의 전에도 자신이 최고라고 말하고 다닌 사람은 있었죠. 그러나 Ali만큼 효과가 없었는데요. 이분은 말을 너무 잘했습니다. 귀에 잘 들어오고 기억하기 쉽게 했죠. 요즘 rap 음악이라든가 시에서 볼 수 있는 rhymes을 사용하기도 했고요. Rhyme이 안되더라도 rhythm감 있는 구성과 전달로 사람들이 보고 들으면서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잘 알고있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도 사실은 뒤에 한 줄이 더 있어서 rhyme이 됩니다. 영어로 “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라고 해서, “bee”가 끝 단어죠. 그 다음줄은 “His eyes can’t hit what his eyes can’t see” 즉 보이지 않는 것을 칠 수는 없으니까,라는 말인데, 마지막 단어가 “see”라서 rhyme이 됩니다. 미국에서는 응원이나 유세, protest등에서 여러명이 같이 구호를 외칠 때도 rhyme을 이용하기도 하죠. 또 노래가사도 대부분 rhymes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interview처럼 그냥 말로 평범하게 하는 경우에 rhymes을 하거나 rhythm을 타는 것은 흔하지 않았죠. 게다가 그 말의 내용이 대부분 자신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을 해서, 일각에서는 나중에 나온 rap music의 시초가 어찌보면 Ali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진짜이건 아니건, 요즘 한국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듯한 swag이라는 말의 뜻을 Ali가 몸소 그 옛날부터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Hip-hop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swag이 중요한 요소라는 걸 생각해보면 연관성이 있기는 한 것 같죠?

이분이 싸운 유명한 시합이 몇 있는데, 그중 70년대에 열린 두 경기는 rhymes이 되는 제목이 따로 있습니다. 우선 “the Rumble in the Jungle”이라고, Africa에서 열린 시합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고요. 두번째는 the Philippines에서 치룬 경기인데, “the Thrilla in Manila”라는 이름입니다. 여기서 “thrilla”는 원래 “thriller”이지만 끝의 “r” 발음을 하지 않고 소리나는 대로 적으면 이렇게도 쓸 수 있죠. 사실 Ali가 지은 이름입니다. Ali는 자신을 홍보하는데도 천재였지만 다른 사람을 놀리거나 비방하는데도 재주가 있었는데요. 요즘은 한국에서 그런 것을 통틀어 “언론 플레이” 또는 “언플”이라고 한다는데, Ali는 그 언플의 귀재였죠. 사실이 아니거나 남에게 상처가 될 말도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면 주저하지 않고 했었습니다. 그중 Ali의 숙적이라 할 수 있는 Joe Frazier에게는 gorilla라고 불렀는데요. 시합을 앞두고 rhymes을 가득 써서 “It will be a killa and a thrilla and a chilla when I get the gorilla in Manila”라고 상대의 기를 죽이는 발언을 했는데, 거기에서 나온 제목입니다.

다음은 Muslim, 개명, 그리고 양심적 병역기피의 대명사로서의 Ali입니다. 원래 Cassius Clay라는 이름이다가 Islam으로 개종하면서 이름도 1964년경에 Muhammad Ali로 바꿨고요. Vietnam War에 가지 않겠다고 conscientious objector가 되면서 67년에 세계 champion title을 박탈당했고, 자격정지까지 받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미국인들 중에는 Ali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죠. 그래서 이분이 20대 후반이었을 때 만 3년 반이 넘는 기간동안 선수생활을 하지 못했는데요. 사실 우리가 기억하는 나비처럼 가볍고 날렵한 Ali는 그 전이고, 70년대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큰 events로서의 경기때는 다른 heavyweight 선수들과 조금 더 비슷한 권투방법을 보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은 sports 중계자였던 Howard Cosell과의 우정인데요. 미국의 sports 중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이분은 Ali와 정반대인 것 같으면서도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친했고 이제는 전설이 된 interviews도 많습니다. Ali의 종교나 정치적인 성향을 지지하기보다는 그런 성향일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옹호해줬고요, 개명한 후에도 바로 새 이름으로 불러줬습니다. Cosell은 변호사 출신으로 sports 중계를 하면서도 어려운 단어와 문법을 자유자재로 썼는데, 60년대 interview에서 Cosell이 Ali에게 네가 오늘 유난히 “truculent”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Ali가 바로 받아서 “whatever truculent means, if it’s good, I’m that”이라는 대답을 하죠. “Truculent”는 조금 어려운 형용사로, 무시무시한, 폭력적인, 센, 등등의 뜻이 있습니다. 

또 Ali 하면 미국인들이 떠올리는 사진이 있는데요. 65년에 Sonny Liston을 상대로 title 방어전을 펼치고 down을 시킨 후에 누워있는 Liston 위로 주먹을 들고 서서 아직 분노가 가시지 않은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진은 Ali라는 사람을 1000마디 말보다 함축적으로 더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Parkinson’s disease의 얼굴이죠. 권투때문에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병도 얻었는데요. 그 병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요. 어떤 면에서는 고전적인 hero의 틀에 딱 들어맞는 일생이 되면서 이분의 위상이 더 커졌다고도 하겠는데요. 끝까지 선수시절의 pride를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게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를 알려주기도 했다고 하죠. 96년 Atlanta Olympics 개막식에서 성화를 든 모습 아마 기억나시리라 믿습니다. 전성기 때와 사진과 참 절묘한 쌍을 이루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노래는 Ali와 연관성이 있는 rap genre에서 뽑아봤습니다. 사회의 문제점을 얘기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내용인데요. 2Pac의 “Change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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