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lywood and Identity
미국이 예전과 비교해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작아졌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문화적인 면에서는, 특히 대중문화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는데요. 한국사람도 미국 영화나 TV에 출연하거나 미국의 대중음악 chart에 오르게 되면 그 자체로 그사람에 대한 평이 영원히 바뀔정도라고 하니, 무시 못할 일입니다. 미국의 대중문화는 미국 사회의 상황을 반영하기도 하고, 때로는 흐름을 주도해나가기도 한다는 면에서 경제적인 규모와 더불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몇 년간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경찰과 흑인 사이의 문제는 다른 분야에서도 인종문제에 민감하게 반등하게끔 만들었는데요. Hollywood에서는 이 현상이 영화계와 TV에서 약간 다르게 나타났죠. 즉 지난 2년동안 Oscars 상에서는 주요 부문에 흑인이 한 명도 후보에 오르지 않아서 큰 비판을 들었지만, TV쪽, 특히 영화와 같이 시상하고 외신기자들이 투표하는 the Golden Globes가 아닌, 오로지 TV만 다루는 the Emmys에서는 흑인들이 큰 상을 많이 탔는데요. 최근에는 흑인 뿐만이 아니라 비백인, 또는 비-WASP 사람들이 비중있거나 주연으로 나오는 작품도 많았죠. 이번 Emmys 수상자를 보아도 연기 상이 12개였는데 그중 4 개가 비백인에게 돌아갔습니다. 흑인이 세 분이고 Egypt 이민자의 2세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탔죠. 작품상에도 흑인 comedians 두 사람이 주인공인 작품이 수상을 했고요, 또 유명한 흑인 운동선수의 재판 사건을 그린 작품도 수상자와 후보자를 많이 배출했습니다. 동Asia쪽 사람은 올해 아쉽게도 없었지만, 남Asia, 즉 인도 이민자의 2세인 배우 겸 작가가 극본상을 수상했죠.
물론 아직도 Hollywood의 기준은 백인 남성입니다. 예전에 이 Something Good 코너에서 동양인에 대한 미국의 고정관념을 다루면서 백인이 다른 인종을 연기하는 것을 whitewashing이라고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것과 관련된 개념으로 passing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Hollywood에서 생긴 말이 아닙니다. 19세기에 노예였던 흑인이 도망을 가거나, 혹은 처음부터 자유인이었던 흑인이 흑인으로 지내기 약간 불편한 고장에 갔을 때, 그중 피부색이 흰 편이고 이목구비가 백인과 비슷한 사람들이 백인행세를 하던 것에서 유래한 용어인데요. 동사로 쓸 때는 “pass for”라고 해서 내가 아닌 것이지만 그럴듯하게 보여서 넘어간다는 뜻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종뿐만이 아니라 민족, 나이, 직업, 성격, 국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쓸 수 있습니다.
백인 배우들은 동양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인종도 연기를 했었죠. 그렇게 보인다고 믿었는지, 아니면 그래야만 흥행이 된다고 생각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Europe계 백인인 배우가 중동계, 북Africa계 인물을 연기한 적도 많고, 흑인이나 흑인 혼혈을 연기하기도 했고, 또 Latino 인물을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도 이런 경우는 힘들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요즘 news에 나오는 Angelina Jolie가 흑인쪽 Cuba 사람을 연기하거나, Ben Affleck이 Mexican-American을 연기했고, Juliette Binoche와 Jennifer Connelly는 Latinas을 연기했으며, Joseph Feines는 영국 TV 영화에서 Michael Jackson을 연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원주민이 영화에 나올 때, 예전에는 우선 악역으로 많이 나왔죠. 그리고 배우도 원주민이 아닌 백인인 경우도 많았고요. 최근에도 Johnny Depp이 원주민 배역인 Tonto로 나왔었죠.미국의 유명한 감독인 John Ford는 1960년대에 들어, 자신이 예전에 이렇게 원주민을 나쁘게만 그린 것을 후회하면서 그중 Cheyenne족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는 Cheyenne Autumn이라는 영화를 만드는데요. 사실 영화속에서 원주민으로 나오는 배역을 잘 알려진 배우이면서 약간의 원주민 피가 섞인 배우에게 주려고 했으나 제작사의 반대로 그러지 못했다고 하죠. 그런데 원주민 보조출연자를 Cheyenne 대신 Navajo 사람들을 썼다고 해요. 백인들에게는 그거가 그거로 보였을 수도 있죠. 그런데 영화 속에서 아주 엄숙한 장면이 나오면서 원주민들이 자기네 말로 뭐라고 하는데, 그 대사를 배우들에게 임의로 맡겼다고 합니다. Navajo 사람들은 저항을 하는 의미에서 이 대목에서 영화의 내용과 전혀 알맞지 않은, 점잖은 자리에서는 입에 올릴 수 없는 그런 말을 했다고 하죠.
이것과 비슷한 장면이 무술 영화 등을 parody한 70년대 작품 the Kentucky Fried Movie에 나옵니다. 악당의 두목이자 중국인으로 나오는 한국인 배우분이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한국어를 하시면서 하라고 시키니 어쩔 수 없고, 한국 관객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제압하려 여러 부하들을 내보내면서 이름을 부르는데, 김치, 짜장면, 등으로 부르죠.
그나마 예전보다는 백인이 다른 인종을 연기하는 건 줄었지만, 대중들이 더 엄격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인종이라도, 민족이 다르면 또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요. Mexican-American 가수였던 Selena를 연기하는데 Mexico 출신이 아닌 Puerto Rico 계통인 Jennifer Lopez가 뽑히자 말이 많았었고요. Geisha의 역이 일본 배우가 아닌 중국 배우에게 돌아갔을 때도 일본에서는 좋지 않은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될 수 있으면 인종, 민족 등을 맞춰서 casting한다고 하죠.
그런데 이제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인종이나 민족 외의 정체성에 관한 것인데요. 즉 성 정체성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양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연기할 때 꼭 “저는 완전 양성애고요, 연기만 하는 거예요”라는 사족을 달았었죠. 지금은 좀 달라졌고요. 또 반대로 동성애자가 양성애자를 연기하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이 자체는 이제 전만큼 큰 화제는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되었는데요. 그러자 조금 더 미묘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영어 그대로 쓰이고 있다는 transgender에 관한 것인데요. 미국에서는 요즘 화장실과 관련해서 큰 issue로 떠오르고 있죠. Transgender인 인물이 나온 작품이 꽤 많습니다. Dog Day Afternoon, The Danish Girl, Boys Don’t Cry, Transamerica, Dallas Buyers Club 등 Academy 후보와 수상자를 낸 작품부터, 요즘 net dramas로는 Orange Is the New Black이나 Transparent등이 있죠. 이중 한 작품 외에는 다 transgender가 아닌 여자배우나 남자배우가 연기를 했는데요. 여기에 대해서도 예전에 백인이 타 인종을 연기한 것과 비슷한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참고로 Transparent에서 transgender 주인공으로 나오는 남자배우는 2년 연속 Emmy를 받으면서 소감으로 내가 이런 역을 하는 마지막 cisgender여도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했는데요. 여기서 cisgender라는 말은 transgender에 대조되는 단어로, cis-는 어떤 쪽에 속하다라는 뜻을 가진 Latin어의 접두사입니다. 즉 태어날 때의 성과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동의를 하시거나 하지 않으시더라도, 관계된 용어는 아셔야 의견을 말씀하실 수 있고 여러 내용을 이해하실 수 있겠죠.
앞으로는 robot이 robot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차례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 노래는 가을의 시작을 기념하면서 “Early Autumn”이라는 standard곡을 The Four Freshmen의 멋진 화음으로 들어보시겠습니다.